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월 8일(수)
가벼움과 무거움은 상대적이다.
마치 긴 것과 짧은 것.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처럼 절대적이지 않으며 상대적이다.
이분법적이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생도 이와 같다.
삶이란 가벼운것인가 무거운것인가.
그 어느 누가 타인의 인생을 가볍다고 하거나 무겁다고 할 수 있는가.
가볍다 무겁다 길다 짧다 등의 개념은 개체를 바라보는 내가 기준이 된다.
타인이 말하는 형용사는 타인의 잣대에 비추어 입으로 나온 그만의 표현식일뿐. 절대로 나의 기준(상황, 감정, 환경 등을 고려하여)과 완벽하게 동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이 나에게 말하는 내 삶의 경중은 정보적 가치 혹은 나를 위하는 당신의 마음만이 남게된다.
석가모니의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나만을 등불로 삼아 나아가라는 말처럼 내 삶의 무게는 오로지 나만이 측정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삶의 무게는 과연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아. 그 전에. 무거운 것은 좋은 것인가. 나쁜것인가.
책에 인용구처럼 무거운 짐이란 것은 점점 땅으로 내려가 현실적이다.
가벼운 것은 점점 하늘로 올라가고 점점 더 가벼워질수록 종국에는 무의미한 지경까지 갈 수 있다고 나온다.
나의 사유를 적자면 무거운 것은 현실적이지만 무거워질수록 움직임이 더뎌진다. 종국에는 절대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가벼운 것은 자유롭지만 너무 가벼워지면 여기저기 휩쓸리며 무의미한 먼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은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과함과 적당함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더 건전해보인다.
그동안 나의 삶은 가벼움과 자유로움의 스케치였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삶에 무게를 더해가며 현실로 내려가고자 한다.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너무 가볍지도 않은 삶이라는 정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최적의 상태가 지향해야 할 나의 삶의 자세라고 겸허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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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일(목)
동정 ; compassion ; com (함께) + passio (고통) ; co - sentiment
동정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고통을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테레자가 자신의 서랍을 뒤져 다른 여자들과의 편지를 읽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토마시는 당연히 화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타인의 것을 뒤지는 것은 자유의 침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시는 이미 테레자에 대한 동정에 사로잡혔기에 그녀를 오히려 보듬어줄 수 있었다.
서양 작가이기 때문인가.
작가는 다른 여자들과 항상 바람을 피우는 토마시에 대해선 별다른 죄악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유의 침해를 기본으로 삼고 동정에 사로잡혀 행동하는 주인공으로 서술한다.
동양인의 관점에서는 토마시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여자에게도 구속받지 않으려는(가벼움의 가치) 토마시는 극단적 죄인으로까지 묘사되지는 않는다.
내가 가진 당연하다는 상식, 문화적 공감, 사회적 동의는 내가 서있는 곳의 풍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당연한 것은 왜 당연한 것인가.
정녕 어떠한 의제가 당연한 것인가인지를 항상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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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월)
2부 : 영혼과 육체
과학에 의해서 영혼이 뇌의 전기적 신호로 이루어진 복합체라고 밝혀질지라도.
그리하여 인간이 단순히 화학적인 신호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위 속에서 허기짐을 표현하는 꼬르륵 소리 하나에도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영혼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의 영혼은 오늘도 육체와 대화를 했는가?
나의 영혼은 오늘도 어제보다 더 건강하며 위대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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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월)
파울로 코엘로의 "연금술사"를 인용하자면 삶에 때때로 나타나는 표지판 같을 것을 표징이라고 정의한다면,
우연이 발생해서 표징을 알아차리는 것일까.
표징을 생각하다보니 우연으로 간주되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
두 가지 모두가 뒤섞여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작은 바람들이 모여 수면의 수없이 많은 물결을 만들듯이
우리의 인생도 작은 우연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순환계의 일부분일 것이다.
우연 하나, 우연 둘, 우연 셋,..
0살부터 n살까지 모든 우연의 시그마는 인생
If we were to quote Paulo Coelho's "The Alchemist,"
stating that if we define omens as signs that occasionally appear in life,
then are they merely coincidences that make us aware of these signs?
Does the occurrence of events that are considered coincidental stem from contemplating omens?
Or is it a combination of both, with both elements working together in a complex manner?
Regardless of what it may be,
just as small winds gather to create countless waves on the surface of the water,
our lives are also composed of small fragments of coincidences,
forming part of a vast cycle.
One coincidence, two coincidences, three coincidences...
From the age of 0 to the age of n, the sigma of all coincidences represents life's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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