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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에 속지 마라 - 나심 니콜라스 탈렙 Fooled By Randomness

행운에 속지 마라  - 나심 니콜라스 탈렙 독서모임에서 나심 니콜라스 탈렙의 행운에 속지 마라 라는 책을 듣게 되었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 이 책에 대해 종종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전면으로 내세워져 독서모임 선정도서라던지 유투브에서 집중리뷰를 본 적은 없다.(내 유투브 알고리즘의 편식일지도 모른다) 서울도서관에서 자본,주식,투자와 관련된 다양한 서적을 읽어가던 차에 마침 누군가가 평소에 보던 책을 선점해버렸다. 이번이 기회다싶어 스쳐지나가며 듣기만 했던 이번 책을 읽게 되었다. 내용은 생각보다 깊은 집중을 요구한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긴 서술형으로 되어 있어 토막시간으로는 체득하지 못할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읽어보니 나름 괜찮다. 나심 탈렙 본인은 많은 문제를 몬테카를로 기법을 통해 선 시뮬레이션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몬테카를로 기법.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서 ChatGPT의 도움을 받았다. 몬테카를로 기법(Monte Carlo method)은 확률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수학적 또는 물리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 방법은 난수를 사용하여 문제의 가능한 모든 경우를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추정하는 데에 활용됩니다.  1. 난수 생성: 문제에 맞는 난수 생성기를 사용하여 무작위로 변수 값을 생성합니다. 2. 샘플링: 생성된 난수를 이용하여 문제를 시뮬레이션합니다. 예를 들어, 함수를 계산하거나 확률적인 사건을 시뮬레이션합니다. 3. 결과 추정: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원하는 값을 추정합니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평균내거나 통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값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풋으로 난수를 발생시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이다. 생각보다 좋은 도구를 발견했다. 언젠가 주가/부동산 시나리오를 만들때 몬테카를로 기법을 꼭 잊지 말아야겠다. Fooled By Randomness - Nassi...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월 8일(수) 가벼움과 무거움은 상대적이다. 마치 긴 것과 짧은 것.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처럼 절대적이지 않으며 상대적이다. 이분법적이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생도 이와 같다. 삶이란 가벼운것인가 무거운것인가. 그 어느 누가 타인의 인생을 가볍다고 하거나 무겁다고 할 수 있는가. 가볍다 무겁다 길다 짧다 등의 개념은 개체를 바라보는 내가 기준이 된다. 타인이 말하는 형용사는 타인의 잣대에 비추어 입으로 나온 그만의 표현식일뿐. 절대로 나의 기준(상황, 감정, 환경 등을 고려하여)과 완벽하게 동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이 나에게 말하는 내 삶의 경중은 정보적 가치 혹은 나를 위하는 당신의 마음만이 남게된다. 석가모니의 세상의 풍파에 휩쓸리지 말고 오직 나만을 등불로 삼아 나아가라는 말처럼 내 삶의 무게는 오로지 나만이 측정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삶의 무게는 과연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아. 그 전에. 무거운 것은 좋은 것인가. 나쁜것인가. 책에 인용구처럼 무거운 짐이란 것은 점점 땅으로 내려가 현실적이다. 가벼운 것은 점점 하늘로 올라가고 점점 더 가벼워질수록 종국에는 무의미한 지경까지 갈 수 있다고 나온다. 나의 사유를 적자면 무거운 것은 현실적이지만 무거워질수록 움직임이 더뎌진다. 종국에는 절대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가벼운 것은 자유롭지만 너무 가벼워지면 여기저기 휩쓸리며 무의미한 먼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은 좋고 나쁨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과함과 적당함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더 건전해보인다. 그동안 나의 삶은 가벼움과 자유로움의 스케치였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삶에 무게를 더해가며 현실로 내려가고자 한다.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너무 가볍지도 않은 삶이라는 정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최적의 상태가 지향해야 할 나의 삶의 자세라고 겸허히 생각해본다. --- 3월 9일(목) 동정 ; co...

투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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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란 무엇인가? 투자란 자산에 현금을 투사하여 미래의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투자란 무엇인가. 처음 제시한 투자의 정의와 다르지 않다. 첫문장을 잘하는 것이 성공적인 투자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명확한 해석을 위해 성공적인 투자를 재정의 해보자면 '훌륭한 자산'에 '현재의 현금'을 '인내심 있게 투사'하여 '확고한 미래의 현금흐름'을 보장받는 것이다. 각각의 키워드를 해체해서 조금 더 깊이 해석 해본다. - 훌륭한 자산 - 현재의 현금 - 인내심 있는 투사 - 확고한 미래 현금흐름 이 네 가지가 투자의 기본이다. 1. 훌륭한 자산이란 무엇인가? 훌륭한 자산은 적은 리스크로 높은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을 말한다. 예금 / 적금 / 채권 / 주식 / 부동산 / SWAP / 선물 / 옵션 등은 모두 자산이다. 각각의 자산군들은 모두 훌륭한 자산을 내포하고 있다. 하워드 막스가 이야기한 자본시장선(Capital Market Line)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평소에 취할 수 있는 자산군의 리스크와 수익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볼 수 있다. 위의 그래프처럼 각각의 자산군들은 리스크와 수익률이 다른 분포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훌륭한 자산이란 위의 자산군 모두에서 발견될 수 있다. 평균대비 높은 예금 금리, 강력하고 안전한 미국국채, 선진국 채권, 건전한 기업의 회사채, S&P500지수 추종 상품, 건전 재무를 갖춘 우량기업주식,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은 금싸라기 땅, 년간 꾸준히 25%를 상위하는 실적의 사모펀드 상품 등은 훌륭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리스크가 커지는 자산군에 속할수록 훌륭한 자산으로 평가받기 위해선 그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많아짐을 알 수 있다. 강력하고 안전한, 건전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낮은, 년간 꾸준히 25%를 상위하는 실적 등등... 주식을 하는 입장에서 훌륭한 자산이란 기업의 펀더멘탈이 튼튼하고 재무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다. 근 3 ...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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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지음 - 드디어 그 책. 연금술사를 일독하였다. 중학생 시절일까.  그 때에 구매하였던 책은 수년간 이사를 하며 유목생활을 하던 나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단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책이다. 그 사이에 나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회사원이 되었다. 삼십대를 넘어서 처음읽은 이 책은 내게 소소한 울림을 주었다. 모든 것에는 가장 원초적인 만물의 정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어도 외면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만물의 정기를 나는 본인의 영혼의 길로 해석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외부환경에 겁박당해 자신을 비교하며 정말로 중요한 그 무언가를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집이 있는가? 자산은 얼마나 되는가? 이성친구는 있는가? 연봉은 어떻게 되는가? 결혼은 했는가? 권력을 잡았는가? 우리는 왜 본질과 영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사회와 타인의 시선만을 위해 살아가는가. 사람의 영혼의 길은 모두 제각각이다. '가장 성공한 사람'의 정의를 하자면 자신만의 영혼의 길을 걸어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가수일수도, 가정을 꾸리는 것일수도, 대통령일수도, 혹은 불가에 몸을 의탁한 스님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영혼의 길은 무엇일까... 책에서 산티아고는 스페인의 초원에서 양을 치던 양치기였다. 그러다 어느날 한 버려진 옛 교회의 무화과나무 밑에서 잠을 자다가 피라미드 근처에 뭍혀있는 보물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고 그길로 피라미드로 향하게 된다. 가는 길에 갖은 고생을 하지만 결국 피라미드에 도착해 보물을 파내다가 지나가던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다. 산티아고가 거기서 땅을 파던 이유를 실토하자 한 병사가 몇년 전에 자신도 스페인의 한 교회 무화과나무 밑에서 보물이 뭍혀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꿈 따위에 이집트에서 스페인까지 가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산티아고는 마침내 보물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참 웃기는 책이다. 중학교 ...

공부의 이유 -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공부의 이유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카페에서 독서를 하던 참에 옆 테이블의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들을려고 들은것은 아니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속의 고막을 두드려대었다. 아마도 과외학생과 과외선생 사이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여학생은 고등학교 문제집을 풀고 있었고 남자는 그런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입구역 카페에서 있었으니 낮지 않은 확률로 남자는 서울대학교 학생일듯 싶다. 여기까지는 모든게 완벽했지만 카페에 앉아 독서를 하는 내내 나의 신경을 건드렸던 것은 남자의 교육스타일이었다. 학생의 행동이나 문제풀이가 하나한 이해 안간다는 듯이 계속해서 짜증섞인 꾸중을 주고 있었다. 다행이 학생은 그런 과외선생의 꾸중이 익숙한듯했다. 선생님의 꾸중에도 방긋하며 "왜 이렇게 문제를 풀고 있는지 저도 모르겠어용 ㅎㅎ" 이런식으로 웃어보였다.  선생은 학생의 문제풀이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학생의 문제 하나하나 지적하는데 바빠보였다. 그 지점에서 독서를 하던 나에게 깊은 상념의 시간이 찾아왔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이 귀중한 시간에 카페에 앉아 비싼 커피를 마시며 공부를 하고 있으며 또한 그 학습을 지도하고 있는가? 이러한 생각은 그들에 대한 관찰에서 확장되어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도대체 왜 공부를 하는가?' 여기서 공부에 대한 어원을 살펴보면(잠시 나무위키의 힘을 빌려) 불교 종파의 하나인 선종 을 통해서 퍼진 용어라고 한다. 공부의 한자어 조합은 백 화문 으로 기록된 당나라  선승들의 어록에서 처음으로 확인되는데, 당시에는 做工夫(주공부)와 같은 형태의 숙어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불법을  열심히 닦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송나라 시대의 대학자인 주자 가 자신의 책 <근사록(近思錄)>에서 송학(宋學)의 선구자였던 정명도와 정이천의 사상을 표현하는 말로 '공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유학자들 사...